귀촌, 그리고 집을 짓다

ㄴㅇㅁㅇㄴ

남해 중에서도 아주 작은 어촌마을.

좋은 곳들이 많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은 너무 비쌌고, 땅값이 저렴한 곳은 다 이유가 있을만큼 별로였다.

남해에 나와있는 매물만 서른 곳이 넘게 둘러보았다.
바쁜 신랑과 일정을 맞추기가 힘들어서 열정 하나만으로 혼자서 매물을 보러 온 적도 있었다.


땅을 산지 2년 만에 도시의 일상을 온전히 정리하고 건축을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딱히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우리 부부가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펜션이라는 숙박 시설을 운영하는 일 밖에는 없어 보였다.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을 작게 지어 소박하게 운영하면서 살자. 라는 우리의 이상이 현실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자본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지 정말 그때는 몰랐다.


공사를 시작하자마자 우리에게는 큰 고비가 닥쳤다.

지하수를 파는 곳마다 짠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미 설계상에 작은 수영장과 노천탕까지 있는데, 짠물밖에 안 나오게 되면 그건 공사를 하면 안 된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상수도사업소에 몇 번이나 찾아갔다.

짠물만 나온다, 물은 써야 한다, 마을 물은 지금도 부족하다, 물을 주세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결국 상수도 관이 연결되어 있는 곳부터 우리 땅까지 800m 남짓 거리를 자비로 상수도 공사를 하고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흙을 채운 트럭이 수십 차나 오갔다.

도대체 이 많은 흙이 다 쓰일까 .. 했는데 결국에는 다 쓰고도 모자랐다.


보강토 옹벽이 세워지던 날의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토목이 끝난 다음에 배관 작업이 이어졌다.

수영장과 노천탕, 그리고 각 객실마다 보일러 배관을 전부 땅 밑으로 묻어야 하나 작업이라 꽤 오랫동안 걸렸고 또 쉽지 않았다.


배관 작업 후 버림 콘크리트를 쳤다.

말 그대로 ‘버려지는’ 콘크리트 작업인데도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던지 -


작은 삼각형의 특이한 수영장은 공사하시는 분들마다 별로 예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모양도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런 얘기를 매일 같이 들으면서도 우리는 묵묵히 우리의 할 일을 해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사하는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와 우리의 의지대로 밀어붙여야 할 때를 잘 구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따라오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수영장에 철근이 세워지고,


목작업이 이어지자,


수영장의 모습이 비로소 나왔다.


그리고 벚꽃이 만발하던 4월,


우리 공간 옆 산책로가 흰색으로 물들 때,..


나는 출산을 했고, 둘째 아들 녀석이 세상 제일 바쁜 때에 우리의 곁으로 다가왔다.


스틸하우스의 골조작업은 실로 멋졌다.

일반 경량 철골과는 달리 엄청 촘촘하게 뼈대가 세워졌고 어려워 보이는 각도 생각보다 잘 나왔다.

그러나 생각보다 스틸하우스 건축 비용이 꽤 비쌌다.


또르르...


10일이면 골조까지 다 올리고 합판 마감까지 한다던 최강 스틸하우스 골조 팀은 까다로운 우리 공간에서 거의 한 달을 갇혀 꼼짝없이 일해야 했다.


뼈대 위에 살이 붙었다.

하교를 한 아이와 함께 갓난쟁이를 업고 매일같이 공사현장을 찾았다.


주차장도 만들었다.

아무리 산책로가 있고 밑에 해안도로가 있어도 마을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주차장 만큼은 좁은 공간이지만 넓게 뺄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만들었다.


데크작업도 끝이 나고,


객실과 우리 집 내부의 마감 칠까지 끝이 났다.

수영장과 노천탕의 타일 작업도 마감이 되었다.

조경공사도 직접 했다.

사실, 바닥에 온통 배관이 깔려있어서 큰 식물들을 심지 못했기에 우리 둘이서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소소하게 해보자며 시작했는데..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돌을 구르고,

등짐을 나르고,

심어도 심어도 줄지 않는 풀떼기를 심고,

한 여름 38도를 육박할 때도 애를 업고 현장에 나가서 저녁이 될 무렵에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서 하루의 고된 일과를 위로받았다.

전기가 처음으로 들어오던 날, 2년을 시골집에서 에어컨 없이 버티다 현장에 전기가 들어오자마자 에어컨을 켰던 그날. 

사실은 눈물이 핑 돌았다.

뭐 하러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에어컨이 된다고 좋아서 세 식구 손을 맞잡고 폴짝폴짝 뛰던 그 순간, 이런 게 인생이고 이런 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같은 노을을 보며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이 퇴근길로 꽉 막힌 도로가 아님을, 아파트 앞동의 콘크리트 벽이
아님을 감사했다.

건축이 완성되어 가는 사이, 둘째 녀석은 기고

앉아서 먹고

서며 폭풍 성장을 했다

딸아이는 어느새 예쁜 것들을 좋아하는 숙녀가 되어가고 있다.

앞쪽은 바다, 오른쪽은 대나무 그리고 왼쪽은 벚꽃나무 산책로인 우리 집은 그 일대의 사람들에게 ‘흰색 지붕집’으로 불린다.

분명 지붕공사를 다 했는데 자꾸만 지붕은 언제 하냐고 물으신다.ㅎ

새들이 노란색 똥을 싸고 밤이면 나방들이 불빛인 양 몰여든다.

그래서 비 내리는 날은 은근히 좋다.

저절로 청소가 되는 날이라서 -

펜션을 해서 돈을 벌려면 주인집은 아주 최소한의 공간이어야 된다고들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고 귀촌을 어렵게 결심하지 않았기에 우리 집을 제일 신경 써서 만들었다.

조금 덜먹고 덜 쓰고 아껴가며 살되, 공간만큼은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랐다.


나는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믿는다.

우리 아이들은 자연이라는,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더욱 자유로운 아이들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박공지붕 이지만 촌스럽지 않고 모던함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화이트와 나무의 감성, 그리고 숲이 한 데 어우러진 우리의 공간.

매일 조금씩 꺾어도 조금만 지나면 벌써 자라있는 대나무도 골치 아프지만 사랑스럽다.

마당에 잔디를 심고 돌을 깔았다.

객실에는 수영장을 각각 설치했지만, 우리가 사는 집에는 수영장이 관리가 안 될 것 같아서 작은 노천탕을 설치했다.

작지만 두 아이들이 재미있게 물놀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심심하기만 하면 물을 틀어 달라고 난리다.

날이 쌀쌀해지니 뜨거운 물을 받아 노는 것은 좋지만 뒷감당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

온 집 바닥이 물 천지이고 모래 천지이다. ㅠㅠ

하지만 아이가 나중에 커서 유년시절을 회상할 때 이런 순간이 즐거움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이런 수고쯤이야. ㅎ

매일 자연을 액자처럼 눈에 담고 싶어서  삼각형 모양의 작은 수영장을 만들었다.

매일 네모난 그림 안에서의 자연을 만난다.

날이 좋을 때나,

흐릴 때나,

구름이 많은 날에도.

자연은 단 한순간도 같지 않다.


우리의 일상도 단 한순간도 같지 않다.

도시에서 살 때에는 틀어박힌 일상이 지겨웠지만, 시골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곳에서의 일상도 매일매일이 똑같진 않았다.

다만 다름을 모를 만큼 정신없고 바빴기에 내 삶을 뒤돌아 볼 여유가 없었을 뿐.

1년 반이 넘도록 꽁꽁 숨겨놓았던 우리 공간의 이름이 들어간 간판도 만들었다.

뭔가 세련된 것은 우리와 맞지 않을 것 같아 선택한 나무 간판은 투박하면서도 정겨움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좋다.

2017년 한 여름, 에어컨도 없는 시골 촌집에서 땀을 흘리며 ‘남해 적정온도’라는 이름을 생각해 낸 설계사분들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ㅎ


객실마다 이름도 지었다.

101, 102..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의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처음으로 나눈 대화가 “소박하게 오셨습니까”라는 감성이 담긴 첫마디가 되기를 바라며.

한 여름 애기를 업고 심었던 풀들은 이제 제법 커졌다.

논 밭에 나 있는 갈대를 하나씩 가져와 거실에다 꽂아놓고 한참을 바라보며 내 욕심을 채운다.

도시에 살 때에는 꽃집에 가야만 꽃병에 꽃을 꽂을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온 자연이 나의 꽃병에 담긴다.

때로는 갈대가, 또 때로는 풀이, 때로는 철에 맞춰 만발하는 꽃도.

도시만큼 시골살이는 바쁘다.

아니 어쩌면 도시에 살 때보다 할 일이 두 배는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잠시 눈만 돌리면 바다가, 숲이, 핑크빛 하늘이 그날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의 노을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면,

딸아이가 벚꽃나무가 드리워진 길로 킥보드를 타고 신나게 내려올 때면, 모닝커피 한 잔을 자연을 바라보며 마실 때.

셀 수도 없는 순간순간에서 나는 행복을 느낀다.

1년 동안 건축을 하면서 정말 많이 힘들고 고생했지만, 나의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스펙타클했던 귀촌 2년,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꿈꿔왔던 이상을 현실로 바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작지만 담담히 ... 화이팅.




[출처] 귀촌, 그리고 집을 짓다.

작성자 나는자유 너는 인디언

2018년 11월 29일